기획논단

桓檀古記 僞書論 批判
 
安昶範
濟州大學校 名譽敎授(韓國哲學 專攻) / 本聯合會 指導委員


Ⅰ. 問題의 提起

『桓檀古記』는 桂延壽 선생이 서기 1911년(光武 15년) 5월 묘향산 檀窟庵(단군굴 암자)에서 <三聖記>ㆍ<檀君世紀>ㆍ<北夫餘紀>ㆍ<太白逸史>를 모아 하나로 묶은 책이다. 그 요점을 두 가지로 정리하면 첫째, 우리 民族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고 둘째,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종교를 창설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桓檀古記』는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밝히고 있다. 민족의 이상을 높이고, 민족의 기강을 강하게 하며, 민족의식이 다시 되살아날 것 같은 굉장한 책이다.
그러나 이들 문제들은 우리 民族의 원초적 종교를 모르고, 漢字를 경솔히 國譯하거나, 古典 섭렵이 많다하더라도 생각이 깊지 않는 사람은 理解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려운 難題들이다.
이를 정리하면, 서기 2005년 현재, ① 9202년 전부터 3301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天山을 중심으로 12연방의 桓國과 7세 桓仁이 있었다는 기록, ② 5901년 전에 배달국의 태조인 환웅천황이 開天立敎하고 以三神設敎하였다는 기록, ③ 기독교 측에서 신화적인 가상 인물로 취급하는 古朝鮮의 태조 檀君王儉이 실존인물인가 아니면 신화적인 존재인가 하는 문제, ④ 中國의 儒學思想으로 배워온 五行思想이 『桓檀古記』에 나오는데 중국사상이냐 아니면 한국사상이냐 하는 문제, ⑤ 寧古塔이 <檀君世紀>와 <北夫餘紀>에 나오는데, 일부 학자는 청나라 때의 지명이라고 주장하는 문제, ⑥ 立法ㆍ司法ㆍ行政의 삼권분립 사상이 <檀奇古史>에 나오는데, 그것이 서구사상이냐 아니면 한국사상이냐 하는 문제 등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이들 문제를 본 논문의 연구대상으로 한다.

그 밖의 天符經ㆍ三一神誥ㆍ參佺戒經의 경전, 삼륜ㆍ오륜ㆍ오계ㆍ팔조ㆍ구서의 계율과 덕목, 鹿書ㆍ花書ㆍ雨書ㆍ龍書ㆍ가림토(神篆) 등의 문자, 上下無等ㆍ男女平權 등의 민주적인 표현과 순수한 역사문제는(고준환 박사 지음, 「하나되는 한국사」, <한국교육진흥재단, 2002, 7, 개정판, 2쇄>의 머리말에서 실증적 역사문제를 자세히 밝히고 있음) 위의 문제가 풀리면 자연히 풀릴 것이므로 본 논문의 연구대상에서 제외한다.
이상의 이유로 『桓檀古記』 僞書論者인 젊은 교수들은 『桓檀古記』?『檀奇古史』ㆍ『揆園史話』를 조작 또는 위조라고 주장한다(단군학회, 「단군학연구」 제2호, 2000. 4. pp.33-50. 조인성의 논문). 반면에 민족종교 측과 재야의 원로 사학자들은 『桓檀古記』를 민족의 상고사를 밝히는 珍書라고 평한다. 그러한 것이 在野 史學派와 講壇 史學派, 민족종교 진영과 기독교 측 사이에 심리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부터 『桓檀古記』 내용 중 僞書論者들이 주장하는 문제점들에 대해 하나하나 해설하고, 典據와 證據를 제시한다. 아울러 그 근본원인이 僞書論者들의 오류에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Ⅱ. 桓檀古記의 問題點과 歷史的 事實의 一致

1. 桓國은 實在했었다.

1) 문제점 : 『桓檀古記』를 보면, 지금부터 약 9200년 전, 중앙아시아의 天山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5만리, 동서로 2만여리에 달하는 12연방의 桓國이 있었고, 이를 3301년 동안 무위이화한 7세 환인이 있었다. 이에 대한 논증이다.
2) 해설 : 換局은 7세 桓因에 의해 무위이화한 神敎國家로서 神政一致 국가였다. 神政一致란 神敎(신선도의 고전적 표현)의 원리가 정치의 원리이며, 신교의 영역이 정치영역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桓國의 영토가 남북으로 5만리, 동서로 2만여리라 함은 신교의 보급영역을 의미하는 것이며, 군사적 정치적 영역이 아니다. 또한 桓國이 12국으로 되었다 함은 신교의 보급영역을 신선도의 12지에 의한 분류의 표현이다.
7세 桓因은 불교의 前七佛과 같고, 그 흔적이 신라의 고도 鷄林(지금의 경주)에 前七佛의 절터가 있다. 일본의 『日本書紀』 및 『古事記』의 건국신화에도 7세의 神이 있다. 중앙아시아 칼마크인의 전설에 나오는 天山과 불교의 수미산이 구조상 동일하며, 신선도와 불교를 연구해 보면, 그 기본사상이 동일하다. 그에 대해서는 졸저 「환웅천황과 한국고유사상의 탄생」,(제주대학교 출판부, 2001) 제2부, 제1편, 제9장 “불교와 신선도의 동일성”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桓檀古記』를 조작이다 위조다 하는 僞書論이 제1차로 부정되고, 珍書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3) 典據 : 주지하는 바와 같이 桓國 12연방 가운데 수밀이국(Sumer)과 우루국(Ur)이 서양사에 나오고, 일부의 이름이 중국인의 사서인 『晉書』 <裨離國等十國傳>에 나온다. 예컨대. “비리국은 숙신의 서북쪽에 있는데 말을 타고 200일을 가야하며 영지의 호수는 2만이다. 양운국은 비리국에서 말을 타고 또 50일을 가야 하는데 영지의 호수는 2만이다. 구막한국은 양운국에서 또 100일을 가야하는데 영지의 호수는 5만여이다. 일군국은 구막한국에서 또 150일 가야 한다. 이를 헤아리니 숙신에서 5만여리를 가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肅愼은 古朝鮮의 別稱이라 일컫기도 하며, 우리 민족이 세운 고대국가를 지칭한다. 『晉書』는 당 태종이 房玄齡과 李延壽를 비롯한 20여명의 학자들에게 명하여 편찬한 東晋과 西晉의 史書로서 25史의 목록에도 올라 있는 中國正史다. 이러한 책에 『桓檀古記』에서 말하는 12연방의 이름이 실려 있고, 疆域까지 5만여리라는 일치된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은 桓國의 실존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桓檀古記』 僞書論 제2차로 부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곧 우리 민족의 역사는 9200여년으로 올라간다. 연구의 대상인 것이다.
4) 實在的 證據 : 최근에 소련의 고고학자 비탈리라리체프가 『시베리아 구석기문화』에서 1975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시베리아 중부 노보시비로크(Novosibirok)山 및 아바칸(abakan)山脈의 계곡에서 3만 5천년 전의 구석기 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하였다. 그곳은 桓國의 중심지이다. 또한 19세기 말엽부터 1930년대에 걸쳐 중앙아시아 타림분지 주변의 유적조사 발굴이 성행하였는데, 그 결과 종래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언어와 문자로 된 전적류가 많이 발견되었다. 여기에서 『桓檀古記』 僞書論 제3차로 부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桓雄天皇의 開通天文과 宗敎創設

1) 문제점 : <三聖記全> 하편에 안파견 환인이 홍익인간을 위해 환웅에게 “開天立敎하고 在世理化하라”하고,? 환웅이 “天經을 演하고 神誥를 講하여 크게 무리를 가르쳤다.”… “桓雄이 以三神設敎하고 佺戒로서 勸善懲惡하는 법을 세웠다”고 하였다. 문제는 開天立敎와 以三神設敎의 해석이다. 이를 오역하여 『桓檀古記』를 위서라고 주장하고 우리 민족은 종교도 철학도 없는 민족이 된다. 중요한 문제이다.
2) 해설 : 첫째, 開天立敎의 해석이다.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하늘을 열고 가르침을 세우다”로 해석한다. 그와 같이 말이 안 되는 해석을 한다. 開天의 開자는 “(문이)열리다. (막히고 닫친 것, 아주 크거나 미세한 것,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드러내다. 관통하다. 개통하다. 大覺하다. 大通하다. (꽃이)피다”의 뜻이다. 天자는 하늘ㆍ땅ㆍ사람의 會意文字로서 “천체ㆍ천체의 운행원리ㆍ자연의 이법ㆍ천도ㆍ천리ㆍ天文ㆍ天門, 그 밖의 모든 것”를 의미한다. 곧 開天은 “天門이 열리다. 천문을 개통하다. 개통천문하다. 天文을 대통하다(관통하다). 천체의 구조와 운행원리를 깨치다. 인체의 돌고 도는 이치를 깨치다. 자연의 이법을 깨치다. 天道를 대각하다”는 등등의 뜻이다. 이와 같이 개천은 삼라만상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立자는 “서다. 세우다. 일어서다”의 뜻이다. 敎자는 “가르치다. 본받다. 교지. 종교”의 뜻이다. 곧 개천입교는 桓雄天皇께서 “천문을 개통하여 종교를 세웠다”는 뜻이다. 그 기념행사가 오늘날의 개천절 행사이다. 뒤에 상설한다.

둘째, 以三神設敎의 해석이다. 이에 대해 보통 “삼신으로 가르침을 설치하다”로 해석한다. 이와 같이 의미도 통하지 않는 해석을 한다. <三神五帝本紀>에 의하면 三神은 天一ㆍ地一ㆍ人一을 의미하며, 一은 천ㆍ지ㆍ인의 작용을 의미한다. 만물은 그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짐으로 三神을 庶物의 원의라 한다. 設敎의 設자는 “만들다, 창설하다. 설치하다. (물건을)진설하다”의 뜻이다. 곧 以三神設敎는 “天一ㆍ地一ㆍ人一의 삼신으로 종교를 만들다”는 뜻이다. 天一ㆍ地一ㆍ人一의 <一>은 작용으로써 <一>을 종교적인 의미로 파악하면, 天一ㆍ地一ㆍ人一은 氣ㆍ心ㆍ身 내지 命ㆍ性ㆍ精이 되고, 거기에서 道敎ㆍ佛敎ㆍ儒敎가 된다. 『丹書口訣』에도 “天ㆍ地ㆍ人을 三才라 하고, 道ㆍ佛ㆍ儒를 三敎라 하니, 三才에서 삼교가 성립된다”고 하였다. 환웅천황께서 창설한 종교가 道ㆍ佛ㆍ儒 삼교일체의 天敎 곧 신선도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본원적 固有宗敎이며, 원천적 根源思想이다. 종교성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拙著를 보아주기 바란다.

셋째, 文字도, 글도, 종이도 없는 太古時代에 어떻게 종교를 창설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곧 經典과 戒律을 어떻게 강론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에 신시에 鹿書, 자부에 雨書, 치우에 花書, 복희에 龍書, 단군에 神篆 등 문자가 있었다 하고, <三一神誥 봉장기>에 임금(桓雄天皇)이 <三一神誥>를 가르치시니(誕訓神誥) 高矢는 동해가에서 푸른 돌을 캐어오고, 神誌는 돌에 경전을 새겨서 전하였다. 또한 박달나무를 다듬어 殷文으로 써서 읽었다고도 하였다. 이를 보면, 돌과 나무에 경전과 계율을 새겨서 전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 역사 탄생이래 처음 있는 일인 것이다.

넷째, 桓雄天皇이 언제ㆍ어디서 종교를 창설했느냐 하는 문제다. <三聖記全>하편에 환웅이 3000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오니 이곳을 신시라 하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弘益人間 在世理化 하였다고 하였다. <檀君世紀>에는 단군왕검이 개천 1565년 10월 3일에 太白山(白頭山) 神市 檀木 아래에 이르러 天神祭를 올리고 국인 九桓의 추대를 받아 朝鮮國을 세웠다고 하였다. 금년이 檀紀 4339년이다. 그러므로 桓雄天皇이 백두산 신시에서 종교를 창설한 때는 지금부터 5902년(1565+4339-2=5902) 전, 음력 10월 3일이다. 이 날이 開天節이다. 그러므로 開天節은 桓雄天皇의 開通天門과 宗敎創設, 그리고 檀君王儉의 朝鮮國 건국 기념행사인 것이다. 뒤에 상설한다.
이상을 정리하면, 桓雄天皇이 지금부터 5902년 전 10월 3일에 백두산 신시에서 天門을 開通하시고, 道ㆍ佛ㆍ儒 삼교일체의 종교를 창설하여 經典과 戒律을 강론하니, 신하들이 돌과 나무에 새겨서 전하고, 3000단부가 모이니, 弘益人間 理化世界 하였다는 것이다.
생각건대, 그때는 세계 인류가 원시의 迷夢에서 깨기 전이다. 일반적으로 문자도 글도 발달하기 전이다. 그러나 桓雄天皇이 天符經ㆍ三一神誥ㆍ參佺戒經의 경전과 三倫ㆍ九誓의 戒律을 강론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일 것이 아닌가? 그것이 弘益人間 理化世界이며 선천개벽이 아닌가? 그래서 수밀이국은 古朝鮮(배달국)을 하느님 나라라 동경하고, 中國에서는 東方禮儀之國 또는 君子之國이라 칭했던 것이다.
人類史에 유래 없는 대변혁이며 憧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滿洲와 韓半島를 중심으로 세계 각 처에 고인돌(한국어로서 “고인 돌멩이”이다)이 생기고, 샤마니즘(한국어로서 “辰韓ㆍ馬韓ㆍ弁韓의 삼한사상”의 변음이다)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후대에 이르면서 古朝鮮에서는 天神敎, 扶餘에서는 代天敎, 高句麗에서는 敬天敎, 新羅에서는 崇天敎, 渤海에서는 眞倧敎, 遼와 金에서는 拜天敎, 滿洲에서 主神敎, 高麗에서는 王儉敎, 現在에는 大倧敎라 전한다. 여기에서 『桓檀古記』 위서론이 제4차로 부정되고, 진서론의 반은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典據 : 첫째, 『天道敎創建史』를 보면, 천도교의 제2대 敎主 崔時亨 先生이 “우리 도의 대운은 天皇氏의 근본원리를 회복시킨 無極之運이며, 天皇氏는 先天開闢의 始祖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義菴 孫秉熙 선생도 “우리 대선생(崔濟愚 선생)께서 비로소 無極大道와 大德의 근본원리와 接靈降話의 이치를 밝혔다고 하나, 개벽 초의 天皇氏로부터 처음 비롯된 운이라 하니 의심하지 말라”하였다.
즉, 崔濟愚ㆍ崔時亨ㆍ孫秉熙 선생은 선천시대에 개벽의 시조인 天皇이 있었고, 그 天皇에 의해 성립된 고유종교가 있었으며, 그 종교를 계승한 것이 東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桓檀古記』 위서론이 제5차로 부정된다.
둘째, 『周易』 <풍지관>에 “하늘의 신비한 법도를 보니 4시의 운행이 어김없는 지라, 이에 성인이 신비한 법도로써 종교를 창설하니 천하가 잘 따르더라 하였고, 『東文選』에도 “신비한 법도로써 宗敎를 창설하니 太平이 가득하다”고 하여 『周易』과 『東文選』이 太古時代에 孔子나 釋迦 탄생 이전에 대성인이 있었고, 그 聖人이 천도에 의해서 종교를 창설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桓檀古記』 위서론이 제6차로 부정된다.
셋째, 『三國史記』 <新羅本紀> 眞興王 37년 조의 <崔致遠鸞郞碑序>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는 道ㆍ佛ㆍ儒 일체의 玄妙之道인 풍류도가 있었다고 하였다. 곧, 만인이 인정하는 『三國史記』가 우리 나라에 道ㆍ佛ㆍ儒 삼교일체의 고유종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桓檀古記』 위서론을 제7차로 부정하는 것이다.
4) 考古學的 實證 : ① 桓雄天皇이 처음 도읍한 곳은 白頭山(太白山) 神市였다. 그런데 홍콩의 星島日報는 중국관영 新華通信을 인용하여 백두산에서 40기의 고대제단 유적과 함께 각종 유물을 발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에 대하여 考古學界는 새로운 古代文化의 유적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白頭山이 신선도의 발상지임을 실증하고, 桓雄天皇의 宗敎創設이 白頭山에서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桓檀古記』 위서론을 제8차로 부정하는 것이다.
② <神市歷代記>에 배달국의 도읍지를 神市에서 靑丘로 옮겼다고 했다. 靑丘는 지금의 만주 요령이다. 그런데 1983~85년에 걸쳐 중국 요령성 능원현 우하량 유적지를 발굴 조사했는데, 거기에서 제사유적과 신전, 塑造神像과 靑銅器 등이 출토되었다. 이를 방사선 측정한 결과 지금부터 5500년 전으로 나왔다. 이것은 배달국의 존재와 고유종교의 실재를 考古學的으로 실증하는 것이다. 그것은 『桓檀古記』 위서론을 제9차로 부정하는 것이다.
③ 1970년 압록강 중상류 길림성 집안시 장천지구 제1호 고분 전실에서 고대의 예불도가 발견되었는데, 불상의 모습과 의복이 印度風이 아니라 韓國風이다. 이것 역시 우리 나라에 고유종교가 있었다는 고고학적 실증인 것이다. 그것은 『桓檀古記』 위서론을 제10차로 부정하는 것이다.
④ 그밖에 宗敎的 실재에 대한 고고학적 근거를 들면, 檀君陵에서 신선사상을 상징하는 금관조각이 발견되었고, 高句麗ㆍ新羅ㆍ百濟ㆍ伽倻 등의 금관, 사찰 내의 탑과 범종, 대웅전과 한옥형의 사찰건물, 칠성각과 산신각, 그밖에도 사찰 내에 있는 불교관련 모든 사물이 신선도의 실재를 증명한다. 그것은 『桓檀古記』 위서론을 제11차로 부정하는 것이다.